세계지리답사/인도: 10개의 글

엘로라 석굴 사원

Posted by 지오VR
2016.02.07 15:18 세계지리답사/인도

 

사진 클릭하시면 엘로라 석굴 사원 360도 VR파노라마 투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정을 바꿔 아우랑가바드를 가기전에 엘로라 석굴을 가기로 했다. 엘로라 석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였던 지라, 몇 번 석굴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오래만에 지식 확인 압박에서 벗어나게되니 느낌의 영혼이 마음껏 춤을 추었다.

경주 석굴암과 중국의 돈황 석굴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불교석굴로 알았던 나에게 엘로라 석굴 사원의 규모와 섬세함 모든 면에서 충격이었다.

 

데칸 고원의 현무암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파내려가면서 만들었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카일라쉬란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산의 이름이라고 한다. 특히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의 거처로 여겨져 의미가 깊은 곳이다. 사실 카일라쉬 산은 티벳에 있기 때문에 중부 인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크리슈나 1세가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엘로라에 그 이름을 본뜬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보통 불교에서 수미산이라 부르는 산이 카일리쉬 산이라고 한다. 이 사원은 라슈뜨라꾸따 왕조의 크리슈나 1세(krishna, 757-783)에 의해 깊이 86m 너비 45m 높이 35m의 규모로 지어졌다. 150년에 걸쳐 7천여 석공들이 동원, 거대한 바위 위에서부터 아래로 쪼아내려 갔다. 제거된 돌의 무게만 20만 톤에 이른다.

 

어떤 이는 말한다. 돌을 깍아 내는 것이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라고... (설계에 의거하여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내고 현지까지 운반하여, 그것들을 조각한 뒤에 헝크러짐 없이 쌓아 올려 건물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고도의 기술과 비용이 필요) 하지만, 여기에 동원된 사람을 상상하고 싶다.

 

중국 석굴 사원의 사암, 석굴암의 화강암, 엘로라의 현무암...

 

인도에서 불교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34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석굴이 서로 고의적으로 훼손한 흔적이 없이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34개의 석굴이 2킬로미터를 넘게 늘어서 있는데, 제1∼12굴이 불교 석굴, 제13∼29굴이 힌두 석굴, 제30∼34굴이 자이나 석굴로서 3종교가 서로 반목하지 않고 평화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시대적으로는 불교 석굴이 7∼8세기, 힌두 석굴이 7∼9세기 그리고 자이나 석굴이 8∼10세기에 만들어졌다. 가장 늦은 시대의 자이나 석굴의 내부공간은 가장 섬세하고 화려하며 규모는 작지만 변화가 풍부하고 밀도가 높은 공간을 보여 준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치트라두르가 요새

Posted by 지오VR
2016.01.31 19:52 세계지리답사/인도

치트라두르가 요새(Fort Chitradurga)


함피(Hampi)에 더 오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벨루르의 유적을 보기위해 하산으로 이동 중에

치트라두르가에서 만난 화강암...

굵은 바위 언덕과 요새...

이러한 암석만 보면

항상 떠오르는 곳이 있다.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눈으로만 볼 수 밖에 없었던 곳,

사진 촬영도 금지된 곳,

정신줄 놓은 곳,

 

그 곳은

동해쪽 금강산 가는 길,

해금강이라고 해야하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석호인 감호를 막 지나면

온통 바위산이 나타난다.

선녀와 나뭇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

구선봉이라 했던가?

금강산 1만2천봉 중 마지막 봉우리라 했던가?

바위산 사이로 난 길 양쪽으로 펼쳐진 그 모습...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았다.

잊을 수 없는 곳이다.

...........

.......

 

가이드의 설명을 듣지않고,바위 정상에 있는 요새에 오르고 싶어 먼저 나아갔지만,

궁전 부근에 도착해서 바위를 보니 엄청 가파르다.

현지인들은 바위에 파인 홈을 밟고 가볍게 오른다.

이 곳으로 오르면 어디로 내려오냐는 질문에 정상에서 다른 길로 내려간단다.


시간적 여유도 없었는데, 욕심을 부렸다.일단 올라본다.

하나 둘.. 오를만 하다.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래를 내려본 순간 아찔하다.

이제 3분의1 올라왔는데, 어찌할까 망설였다.

내려가자니 위험하고 올라가자니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섭고...진퇴양난이다.


결국 포기하고 내려가기로 결심했는데, 옆에 있던 인도인이 손으로 끽~ 한다.

언젠가 누군가 내려가다 미끄러져 죽었다는 것인지?

위험하니까 내려가지 말라는 말인지?


이런... 한참을 서있었다

.......

그 와중에도 vr촬영하고, 등뒤로 바위를 두고 한발 한발...

식은 땀나게 내려오자, 아래쪽에서 기다리던 인도인사진찍자고 한다...

 

 


↑ 사진 클릭하면 요새에 오르는 암벽을 360도 VR파노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관련자료 찾다보니

치트라두르가에 멍키의 왕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청년 조티 라즈, 안전보조장비 없이 맨손으로 치트라두르가 요새에 있는 성벽과 바위를 오른단다.

18살 때 벽을 오르는 원숭이를 본 이후 벽오르기 연습을 해왔다는 조티 라즈,

요새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벽을 오른다고 한다. 유튜브로 볼 수 있다.


 



그는 지금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이날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흔적은 우연히 촬영한 사진 속에 성벽위 하얀 자국으로 남아있다.

 

 

<사진제공 수현 샘>


치트라두르가는 비자야나가라 왕조의 영주 나야카스의 수도,

위키백과 영어 문장 해석 번역기를 돌려보니 내용이 뒤죽박죽이다.어휴....대충 이런 내용인 것 같다...


Madakari Nayaka의 통치기간 동안 치트라두르가는 하이더 알리의 군대에 포위되었습니다.

바위의 구멍을 통해서 치트라두르가 요새에 들어가는 여성을 우연히 목격하고

구멍을 통해 자신의 병사를 보내는 하이더 알리의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그 구멍을 지키는 병사는 점심을 먹기위해 집에 가야만했습니다.

경비병의 아내 Obavva는 물을 구하기 위해 구멍을 지나다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적군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Obavva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Onake(곡물을 두드리는 긴 나무막대)를 들고있었습니다.

그녀는 구멍을 통해 들어오려는 하이더 알리 군인을 하나씩 하나씩 죽였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죽어갔습니다.

단기간에 병사 수백명이 들어왔고 의심의 여지없이 죽어갔습니다.


점심먹고 돌아온 그의 남편은 피뭍은 Onake를 들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주위에 흩어져 있는 적의 수백의 시체를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함께 적과 싸웁니다. 두사람에 의해 하이더 알리의 모든 군인들이 죽어갈 무렵 아내 Obavva는 죽습니다.


바위 구멍은 아직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증표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그녀의 용감한 시도가 요새를 구했지만

Madakari Nayaka이 계속되는 전투에서는 1779 년 하이더 알리의 공격을 격퇴하지 못하고 점령되었습니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아잔타 석굴 VR 파노라마 투어

Posted by 지오VR
2016.01.28 19:37 세계지리답사/인도



360도 VR 파노라마 투어... 사진을 클릭하세요

 

아잔타 석굴  

 

데칸 고원의 중심 아우랑가바드에서 북으로 약 100km, 차로 1시간 30분

일출을 차에서 맞이하며 아잔타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이동, 또 걸어서 표검사하는 곳에 도착하니 아직 개장하지 않았다.

1등 손님이다.

사진에서 본 초승달 모양의 계곡과 절벽 여기저기 구멍난 모습이 반갑다.

아침 햇살이 등뒤에서 비춘다.

석굴입장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지만, 시원하게 느껴지는 발바닥의 촉감이 상쾌하다.

......


1번 석굴... 벽화..

아잔타 석굴의 명성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벽화때문이라한다. 

그 벽화를 볼 수 있는 석굴이 1,2,4,16,17번 석굴이다.

벽화를 그린 이유는 불법을 대중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함이라 들은 것 같다.

익숙하고 친숙한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연화수 보살'

일본 호류사의 금당벽화?

얼굴방향만 다르지 목걸이와 머리모양... 많이 닮았다.

고대 인도의 뛰어난 불교 미술 수준을 가늠케 하는 벽화다.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옷과 액세서리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중국 돈황 석굴과 여러 석굴을 가보았지만,

감흥이 다르다.


연화수 보살



2번 석굴...

1번 석굴에 비해 다소 작기는 하지만 조성시기는 약간 빠른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부처님의 일생을 담은 벽화와 천불화현 변화, 황금거위로 태어났던 부처의 전생 이야기,......

천정엔 원형 및 기히학적 무늬의 문양, 만다라가 그려져 있다.

 

10번 석굴

아잔타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이며 1891년 발견될 때 10번 석굴이었다.

차이티야 양식이다.

석굴암 처럼 천정을 돔의 형태로 만든 석굴을 말한다.

9,10,19,26,29번 석굴이 이에 해당한다.

불교의 석굴사원은, 예배의 장소로 하는 차이티야(Chaitya)굴)과 승려들이 사는 비하라굴로 분류된다.

39개의 팔각형 석주와 좌우 벽에는 벽화가 훼손된 채 그려져 있다.

 

10번 석굴 돔형 천정


17번 석굴

서기 450년대에 조성된 석굴, 아잔타 석굴 벽화의 백미, 최상의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8개의 부처 전생담과 자타카와 부처님 당대의 사건 등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벽화 석굴

 

 

석가모니 사촌동생인 데바닷타가 교권을 장악하기 위해 아잣타사트루왕과 공모하여 술취한 코끼리를 풀어 부처님을 시해하려고 했던 사건이 묘사되어있다. 

 

 

19번 석굴

대승불교 시대 차이티야 양식, 줄무늬 돔과 각양각색의 조각상

 

26번 석굴

아잔타 석굴에 유일하게 석가모니 열반상이 있다.

입구로 들어와 왼쪽 벽면 기둥 뒤로 머리를 입구쪽으로 다리를 내부쪽으로 누워있다.

가운데는 스투파와 불상이 같이 조각된 아잔타에서는 가장 후대에 조각 양식이 남아있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함피 헤마쿠타 힐에서 바라본 비루팍샤 사원...

Posted by 지오VR
2016.01.22 21:00 세계지리답사/인도

 

Hemakuta Hill에서 바라본 비루팍샤 사원 < 위 사진을 클릭하면 360도 vr파노라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인도 답사 여행중 가장 특이하고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함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북인도 이슬람왕조가 남인도를 위협하게 되자, 남인도 힌두 왕조들이 결속하여 14세기(1336년)에 비자야나가르에 왕조을 건설하고, 

위치상의 이점을 살려  향신료와 면제품의 상권을 장악하여 남인도 최대의 제국으로 급성장하다, 

16세기(1556년) 북쪽에서 침입한 회교도(이슬람교) 세력들에게 몰락한 비자야나가르  힌두 왕조가 있었던 곳이 함피이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100만명의 용병을 고용하고, 50만명의 사람들이 거주하였으며, 

집들은 우아한 장식이 달린 발코니를 갖추었고, 궁전은 호화롭다고 했다. 

또한 교역으로 바자르거리엔 수많은 사람들과 외국에서 온 상인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비루팍샤 사원 왼쪽으로 돌아 언덕을 오르니 헤마쿠타 힐,

언덕에 오르니 비루팍샤 사원을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산과 사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자야나가르 힌두 왕조의 폐허 유적들은 매일 뜨고 지는 해와 함께 수많은 여행자를 이곳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수 많은 암석들은 화강암 덩어리...

땅속에서 올라오던 마그마가 식어 굳어 만들어진 것이 화강암,

어떻게 지표에 나오게 되었을까?

화강암 위에 쌓여있던 지표면이 깍여나가면서 화강암이 솟아올랐다.

1년에 0.1mm 깍여나간다면 1억 년이 지나면 10km가 되듯이...

 

그런데 하나의 큰 덩어리가 아닌 것은 왜일까?

지표에 가까와 질 수록 압력이 낮아지고, 이제 화강암은 절리와 균열이 발생...

결빙, 식물뿌리의 침입등으로 서서히 부서진다.

 

 

 

바위산이라 사람살기 힘들 것 같지만

화강암 풍화토와 깨끗하게 정화된 풍부한 물로 인해

사람들이 논농사도 짓고 야자수, 바나나 등을 재배하며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또한 함피에서 가까운 곳에 대형 댐이 건설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물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인도 라다크 레

Posted by 지오VR
2014.08.17 15:47 세계지리답사/인도

 

인도 라다크 '레'

 

레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남걀 체모 곰파 부근에서..

곰파아래 쪽에 있는 건물이 레 왕궁

 

레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고산증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첫발을 내디딜 당시만 하더라도 아무런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주변의 새로운 경관에 빠져 군인아저씨에게 혼나가면서 촬영까지 했으니...^^ 짐을 기다리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내 앞 사람은 엄청 길게 소변을 보고 나온다. 어~어, 나도 그러네. 와~ 오래 나온다..^^

 

고산증상에 대비해 충분한 컨디션 조절을 위해 바로 숙소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 레 시내 몇 곳을 둘러보았다. 아주 천천히 걷고 걸었는데, 숨이 차다. 그래도 참을만 하다.

 

산티 스투파, 재래시장, 남걀체모 곰파, 레 왕궁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름 큰 고통없이 잠을 잤다.

다음 날, 초모리리 호수로 이동....이 곳이 문제였다. 어제 델리에서 3,000미터 이상 한 번에 상승했는데...또 1000미터를 넘게 4500미터 이상으로 또 올라간다. 분명 문제가 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초모리리 호수로 가는 도중 추마탕에서 계란도 삶아먹고 여유를 부렸지만, 4800미터 정도의 고개에 잠깐 멈추었을 때 어지럼증과 답답함이 나타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앉았다 일어났는데 정신없이 빙~ 돈다. 아~ 남미에서 고산증세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방약도 먹지 않았는데.. 와 이건 숨이 탁 막혀오고 정신이 달아나버렸다.

 

초모리리 호수 숙소에 도착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화장실이 움직인다. 와 여긴 화장실이 출렁거리네...침대에 누웠고 산소통이 왔다. 20분정도 2번에 걸쳐 산소를 마셨다. 산소를 마실 때만 머리 통증이 사라지고 떼어내면 얼마가지 않아 또 답답해졌다.

밤이 무서웠다. 계속 말도 안되는 꿈이 반복되고 고통 때문에 아이고 죽것네..신음소리로 밤을 샜다.

(룸메이트 희선샘의 간호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감사)

 

일행들은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 기상...나는 곧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병원 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숨이 꽉 막히고 어지러웠다. 결국 병원문은 열리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부근에 있는 군부대로...

양쪽으로 부축을 받고 의무실로 들어갔다. 혈압도 재고, 손가락에 무엇인가 꽂고 재기도 하고, 다이막스도 먹고, 음료로 된 치료약도 먹고, 그렇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엉덩이에 주사를 맞았다. 엄청 아팠다. 한 5분정도 엉덩이가 꿈틀거리더니 어지럼증이 사라지고...

결국 나는 일행들보다 먼저 고도가 낮은 레로 돌아왔다.

일행들은 5300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고개 탕그라 라를 거쳐 레로 돌아왔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라마유르 곰파와 옴마니반메훔

Posted by 지오VR
2014.08.17 12:38 세계지리답사/인도

 

사진을 클릭하면 360vr파노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스리나가르 방향으로 1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마유르 곰파

옴마니반메훔, 이 주문을 외우거나 중얼거리기만 해도 여러가지 재난에서 관세음보살이 지켜 준답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주문으로, 
이 주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답니다. 옴마니반메훔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라마유르 가는 길 문랜드(moonland)

Posted by 지오VR
2014.08.16 20:07 세계지리답사/인도

 

 

 

 

 

달의 표면과 비슷하다 하여 문랜드(moonland)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곳에 이와 같은 지형이 나타나는 이유는 ?

과거 이곳이 큰 호수였다는 이야기

 

이곳은 대륙판끼리 충돌이 일어나 엄청난 융기가 일어난 지역

 

 

 

'세계지리답사 > 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 라다크 레  (0) 2014.08.17
라마유르 곰파와 옴마니반메훔  (0) 2014.08.17
라마유르 가는 길 문랜드(moonland)  (0) 2014.08.16
인도 꾸뜹 미나르  (0) 2014.08.16
인도 라다크 틱세곰파  (0) 2014.08.16
인도 아그라 타즈마할  (0) 2014.08.13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인도 꾸뜹 미나르

Posted by 지오VR
2014.08.16 19:47 세계지리답사/인도

델리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높이 5층 규모(72.5m)의 웅장한 탑이다. 인도 최초 이슬람 왕조(노예 왕조, Slave Dynasty)의 술탄이었던 꾸뜹 웃 딘 아이바크(Qutab Ud din aibak( ? ~ 1210 )가 세운 승전탑이라 꾸뜹 미나르Qutb Minar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승전탑 외에도 모스크 등 여러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흔적만 남았다.

 

 

꾸뜹 미나르의 미나르는 모스크 안의 탑을 뜻하는 미나레트(Minaret)의 인도식 발음으로, 미나레트의 역할은 이슬람교도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곳이다. "알라 호 아크바르~" 로 시작되는 기도소리

 

 

 

노예 왕조는 1206년부터 1290년까지 인도의 델리를 중심으로 번영한, 투르크 민족이 세운 이슬람 왕조이다. 지배자들 가운데 노예 출신이 많아 노예 왕조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델리 술탄국이라고도 한다. 델리 술탄 왕조는 13세기 초부터 16세기 초까지 인도의 델리를 수도로 하여 약 300년 간 존재한 이슬람 왕조이다. 당시 델리는 갠지즈강과 인도 중서부를 연결하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며, 아프가니스탄 지역으로 통하는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10세기 이후에는 투르크계 왕조인 가즈니 왕조와 고르 왕조의 침략을 받아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델리 술탄 왕조는 모두 5개 왕조로 구성된다. 노예 왕조(1206~1290)를 이어 할지 왕조(1290~1320), 투글루크 왕조(1320~1413), 사이이드 왕조(1414~1451), 로디 왕조(1451~1526)로 발전하였다. 1526년 로디 왕조가 바베르가 세운 무굴 제국에게 멸망당하면서 델리 술탄 왕조는 몰락하였다. 노예 왕조부터 투글루크 왕조까지는 투르크 계통의 왕조이고, 로디 왕조는 아프가니스탄 계통의 왕조이다.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국을 세운 '쿠뜹 웃 딘 아이바크(재위 12061210)'는 어릴 때 노예로 팔려갔으며 아프가니스탄 고르왕조(11871215)의 모하메드고리(재위 1173~1206)의 노예로 왕실 마구간 청소를 맡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재능을 인정 받아서 모하메드의 무장으로 인도 침략에 나서게 됩니다. 10년에 걸쳐서 북인도 전역을 공략하는데 성공했고 그 공을 인정 받아 인도 방면 지사 겸 총사령관에 임명되어서 델리시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1206년에 고르의 모하메드고리가 암살당한 시점에서 모하메드의 유력한 후계자는 아이바크...

'세계지리답사 > 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 라다크 레  (0) 2014.08.17
라마유르 곰파와 옴마니반메훔  (0) 2014.08.17
라마유르 가는 길 문랜드(moonland)  (0) 2014.08.16
인도 꾸뜹 미나르  (0) 2014.08.16
인도 라다크 틱세곰파  (0) 2014.08.16
인도 아그라 타즈마할  (0) 2014.08.13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인도 라다크 틱세곰파

Posted by 지오VR
2014.08.16 14:51 세계지리답사/인도


 


사진을 클릭하시면 360 vr파노라마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도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카슈미르 주는 중국, 티베트,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분쟁지역으로 오랜 세월 여행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74년경에야 외부에 개방됐다. 그나마도 1년 중 라다크 여행이 가능한 시기는 6월부터 9월까지 정도.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인한 도로 통제 때문에 일반인들이 라다크를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길어야 고작 3~4달 정도가 전부다.

 
라다크는 인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잠무카슈미르 주에 속하나, 단지 행정구역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라다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와는 내적, 외적으로 참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라다크는 아주 오래 전에는 티베트의 일부였으며 10세기경에는 9백년 정도 독립된 왕국을 유지했다. 그러다 19세기 무렵 힌두 도그라스의 침입을 받으면서 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라다크는 인도 라다크라기보다 그냥 라다크다.

 

라다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곰파를 둘러보는 것. 해발 약 3,500m 높이에 위치한 레는 라다크의 수도로 예전에는 히말라야 설산을 지나는 대상들이 머물렀던 실크로드 요충지이자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곰파는 티베트어로 ‘조용한 곳’을 뜻하는데, 그에 걸맞게 다소 외떨어진 산 위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레에서 남쪽으로 17km 떨어진 틱세 곰파Tiksey Gompa는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엽서 같은 풍경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라다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파로 손꼽힌다. 언덕에 펼쳐진 곰파 자체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내다보는 전망 또한 기가 막히다. 잠시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히말라야 산맥의 운치를 즐겨 봐도 좋다.

 



곰파는 사원(절)을 뜻함.

 

'세계지리답사 > 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 라다크 레  (0) 2014.08.17
라마유르 곰파와 옴마니반메훔  (0) 2014.08.17
라마유르 가는 길 문랜드(moonland)  (0) 2014.08.16
인도 꾸뜹 미나르  (0) 2014.08.16
인도 라다크 틱세곰파  (0) 2014.08.16
인도 아그라 타즈마할  (0) 2014.08.13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인도 아그라 타즈마할

Posted by 지오VR
2014.08.13 19:02 세계지리답사/인도

 

 

타즈마할 입장권

현지인 20루피, 외국인 750 루피 (한화 12,600원 정도 2014. 8월 현재)

 

 

인도 타즈마할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제국의 대표적 건축물,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뭄타즈 마할이 죽은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22년에 걸려 완공하였다.(1631년 ~ 1653년)

타즈마할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힌두-이슬람양식)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인도 타즈마할

입구에서 금속탐지기를 이용하여 소지품을 검색하고, 직접 가방을 열어 확인하고, 음식물, 액체, 화장품, 껌, 삼각대, 볼펜...일절 반입금지이다. 카메라와 핸드폰은 가능하다. 그런데영상장비 캠코더는 안된다. 특이한 점은 인도의 대부분의 유료 유적지는 영상 촬영을 할 경우 돈을 받고 허가한다. 요즘은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영상기능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별 이상없이 반입이 된다. 외국인 입장료는 폭탄이다. 맨발로 다니지 않을 경우 덧신을 착용해야 한다.

엄청난 관광객....사쟈한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고통스럽게 하여 완성한 건축물이, 후세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돈을 벌게하고 있다....그 엄청난 수입이 과연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도 타즈마할

 

삼각대 반입금지, 모든 VR파노라마는 손각대로 촬영할 수 밖에 없었다. 

'세계지리답사 > 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 라다크 레  (0) 2014.08.17
라마유르 곰파와 옴마니반메훔  (0) 2014.08.17
라마유르 가는 길 문랜드(moonland)  (0) 2014.08.16
인도 꾸뜹 미나르  (0) 2014.08.16
인도 라다크 틱세곰파  (0) 2014.08.16
인도 아그라 타즈마할  (0) 2014.08.13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