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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거문오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거문오름 분화구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흘러나간 용암이 지하에 만든 용암동굴의 무리를 말한다. 벵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등이다. ‘오르다’의 명사형인 오름은 독립된 산 또는 봉우리를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고 ‘악’이라고도 한다. 또한 한라산 산록에 붙어 있는 새끼 화산이기 때문에 기생화산 또는 측화산이라고도 한다. 거문오름은 ‘검은오름’, ‘검은이오름’이라고 불리었는데, 분화구 내부의 울창한 수림이 검은색을 띠고 있어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거문오름 형성과정: 마그마 자체가 가진 폭발력에 의해 많은 양의 스코리아(scoria)를 분출하여 오름의 초기 형태를 만들었다. 점차 마그마의 폭발력이 줄어들면서 뜨거운 용암(파호이호 ..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은 화강암산지이다. 화강암은 마그마가 땅위로 올라오다가 땅속에서 굳어진 암석이다. 땅 속에 있어야 할 화강암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화강암 위에 있던 땅이 깍여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땅이 깍여 나가면서 화강암을 누르고 있던 압력이 줄어들면 암석의 부피가 팽창한다. 이때 금이 가거나 갈라지게 되는 것을 ‘절리’라고 한다. 습곡이나 단층운동으로도 절리가 생기기도 한다. 남산의 화강암에서도 가로로 갈라지거나(판상절리) 양파 껍질처럼 벗겨진(박리) 암석을흔히 볼 수 있다. 남산의 부석, 고깔바위, 상사바위, 농바위, 이무기바위, 큰곰바위, 똥바위, 작은곰 바위, 사자바위 등은 화강암이 땅 속에서 차별적인 풍화가 이루어진 후 풍화토(새프롤라이트, saplorite)가 제거되어 풍화되지 않은 암석(핵..
칠레, 칼라마 추키카마타(Chuquicamata) 광산 2011년 1월 16일 볼리비아와 칠레의 국경선, 수속을 밟고 산 페드로 아타카마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깨끗했고 버스기사의 안내 멘트는 전부 칠레 자랑이다. 국경선을 넘어 칠레로 들어오니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 내내 비포장도로의 굴곡으로 편치 않았던 엉덩이에서부터 부드러움이 몸으로 온전이 전달되었다.(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SF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하는 달의 계곡과 간헐천, 소금호수등을 투어할 수 있는 여행사가 모여있는 아타카마 관광의 거점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칼라마에는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 남미 여행 중 광산 노동자들의 참혹한 삶을 목격하고,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가의 길로 나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추키카마타 광산이 있다. (모터사이클 ..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2011년 1월 파타고니아의 최고의 절경 '파이네 탑' 해발 2000m 이상의 화강암 고봉들이 기품있게 늘어서 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서 먼저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향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푼타 아레나스보다 작은도시. 아담하고 정감이 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를 렌트하고 버스로 약 1시간 30분정도 달리면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출발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2011년 1월 20일 3박 4일 W Trek을 선택했다. 공원입구에 도착해서 입장료를 구입하고 출발, 비가 솟아진다.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웰컴센터까지 이동한 후 하차,( 2011년엔 웰컴센터가 없었음) 우비를 입었지만 어설..
전북 고창 병바위(호암) 병바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아산초등학교 뒤 높이 35m 바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호리병 또는 사람 얼굴로 보인다. 호리병 바위라는 뜻의 '호암'(壺巖)이라 불리었다. 병바위 전설 신선이 선운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타고 온 배를 배맨바위에 매어놓고, 백마를 타고 선운산 일대를 둘러보다가, 이 곳에 살고있는 할머니의 술대접을 받고 크게 취해 잠들어 술병과 소반을 걷어차고 말았다. 술병은 거꾸로 땅에 꽂혀 병바위가 되었고, 뒤집힌 금소반은 소반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병바위 주변의 바위나 마을의 이름에는 신선과 관련된 것이 많다. 신선이 말을 타고 내려와 술을 마시기 위해 안장을 얹어두고 탕건을 벗어 두었다는 안장 바위와 탕건 바위, 술에 취해 잠든 신선을 말이 울며 깨웠다는 마명 바위, 시끄러..
오수, 지명의 유래(주인의 목숨을 구한 의견) '오수(獒樹)'라는 땅이름의 유래 오수 지명은 이 지역의 의견 설화에서 유래하였다. 원래 리(里) 지명이었으나 지역주민들의 건의로 1992년 오수면(獒樹面)으로 바뀌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오수 의견 설화의 내용은 고려 시대 최자(崔滋)가 쓴 『보한집(補閑集)』과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해진다.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居寧縣,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사람인데 집에서 기르는 개를 몹시 사랑하였다. 하루는 개인이 출행하는데 개가 따라 왔다. 개인이 술에 취하여 길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들불이 일어나 사방에서 타들어오니, 개가 가까이 있는 내에 뛰어들어가 몸에 물을 적셔 와서는 개인이 잠들고 있는 주위를 뒹굴어 풀에 물기를 뿌렸다. 이 행동을 반복하여서 불은 껐으나 개는 기진..
정읍 지명의 유래 정읍 지명 관련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에 남아있다. 현재 정읍에 해당하는 지역에 백제의 정촌현(井村縣 : 정읍현), 대시산군(大尸山郡 : 태인현),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 고부군)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읍현에는 【建置沿革】本百濟井村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太山郡領縣高麗屬古阜郡後置監務本朝改爲縣監 (백제 때 정촌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정읍현으로 고쳐 태산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고려에 들어서는 고부에 이속되었고, 뒤에 감무를 두었으며, 조선조에 현감을 두었다.)의 기록이 있다. 또한 【古跡】望夫石 在縣北十里縣人爲行商久不至其妻登山石以望之恐其夫夜行犯害托泥水之汚以作歌名其曲曰井邑世傳登岾望夫石足跡猶在 (망부석(望夫石)은 정읍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현의 사람이..
백두산 360VR Panorama 백두산 민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산 *백두산의 일기 변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급변하고 구름과 안개 낀 날이 많아 백두산과 천지를 온전히 구경하기 어렵다. 9월부터 6월까지 겨울이다. 1월 평균기온이 –23도, 4m두께까지 천지가 언다. 백두산이란 이름은 산꼭대기가 흰 눈과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하얗게 보이기 때문이라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내려와“라는 기록으로 보아 백두산이 태백산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성종 조의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 백두산 바깥에서 살게 했다“는 기록이 우리 문헌 상 백두산이라는 이름의 처음 등장이다. *백두산 형성과정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 4기 초의 화산활동으로 하부는 용암대지 위에 방패를 엎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