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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리답사/인천

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

360 VR파노라마 보기 (사진클릭_2008년 5월 촬영)


옥죽동 해안사구

가로 1km, 세로 500m 규모로 검은낭큰산(206m) 북쪽 산등성이의 80m까지 뒤덮고 있다.
대청도는 원생대 12억~10억 년 전에 형성된 변성 퇴적암인 규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규암이 지표에 노출된 후, 바닷물에 의한 오랜 침식과 풍화로 모래가 된 것이다.

대청도 해안은 전체적으로 암석해안인데, 
곶과 곶사이 만에는 모래가 쌓여 옥죽동해수욕장, 농여해수욕장등 여러개의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해수욕장의 모래가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까지 이동해 쌓인 것으로
북서풍이 강한 겨울철에 성장이 두드러진다.

 

<농여해수욕장 고목바위(구멍바위)>

농여해안에는 습곡 작용을 받아 크게 휘어져 있는 규암층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규암이 파랑과 조류에 마식되어 모래가 생성되고 이 모래들은 다시 파도에 이끌려 해안에 공급된다.
또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의 흐름으로 보아 백령도 쪽에서 상당한 양의 모래가 운반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해안사구는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해안 지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해안사구는 후빙기 해안수면 상승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현재의 해수면을 유지한 6000년 전 이후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리학자 서종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해수면 변동 과정을 고려해 볼 때, 옥죽동 해안사구 또한 약 1000년 전에 형성된 신두리 해안사구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사구는 사방조림 사업으로 예전처럼 모래가 풍부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식생들이 자라나 사구의 모양도 바뀌고 있다.

 

대청도는 동백나무 북한계선에 해당한다.
사탄해수욕장에서 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부근에 동백나무 60여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백령도에도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어 북한계선이 북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청도의 역사적 기록은 <고려사>와 <택리지>에 나온다.

 

<고려사> 1280년 충렬왕2년 원나라 황제의 아들 애아적이, 1324년(충숙왕 2년)에는 패자태자가 대청도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330년(충혜왕 1년) 원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가 태자 시절, 11세의 나이에 계모의 계략으로 대청도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청도에는 순제가 태자 시절 600여명의 식솔과 함께 처음 대청도에 발을 내린 곳이라는 옥자포(지금의 옥죽동), 대청초등학교 자리가 당시 궁궐터였다고 하며, 이곳에서 발견되는 기와는 모두 중국기와라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 황해도편에는 "황해도 장연 남쪽 바다 복판에 대청, 소청 두 섬이 있는데, 그 둘레가 꽤 넓다. 원나라 문종이 순제를 대청도에 귀양 보낸 일이 있다. 순제는 집을 짓고 살면서 순금 부처 하나를 봉안하고 매일 해가 돋을 때마다 고국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도했는데, 얼마뒤 돌아가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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