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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리답사/인천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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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두무진, 사곶 천연 비행장, 남포리 콩돌해안, 진촌리 감람석 포획 현무암 등 특이한 지형과 지질 현상이 나타난다.

고구려 때는 섬 모양이 고니 또는 고니가 많아서 곡도(鵠島)라 했다한다. 이후 고려 시대에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펴고 나는 형상과 같다 하여 백령도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고려 초 1018년(현종 9년)부터 조선 후기까지 백령수군진을 있었던 현재의 백령면사무소가 있는 부근은 진촌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심청전의 인당수가 두무진과 장산곶 사이에 있고, 연꽃이 떠내려왔다는 연화리 등을 바탕으로 심청전의 무대라고 홍보하고 심청각을 세워 관광지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 전파 산실 자생교회인 중화동 교회가 있고 한반도 유일한 물범 서식지가 있는 곳이 백령도이다.

 

사곶 천연 비행장

<1960년대>

 

길이 약 3km, 폭 약 300m의 사곶 해안, 규암이 오랫동안 해수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고운 입자의 모래가 파도 에너지가 약한 만에 쌓여 형성된 것이다.

규암 직경이 0.3mm에도 못미치는 가는 모래는 석영이 주성분으로 바닷물을 머금으면 단단해져 대형 버스도 해변을 다닐 수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비상 활주로로 이용하기도 했다한다. 70년대 콘크리트 장벽 설치, 90년대에 간척공사로 인해 바닷물의 흐름이 변해 점토질 퇴적물이 바다로 쓸려나가지 못하고 사곶해안으로 몰려들어 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콩돌 해안

<콩돌해안 범(BERM)>

 

백령도를 이루는 암석의 3분의 2는 사암이 변성되어 만들어진 규암과 변성셰일이다. 규암은 대부분 석영으로 이루어저 화학적 풍화에 강해 자갈로 남기가 쉽다.

단층과 절리에 의한 파쇄작용으로 부서진 규암 조각이 정육면체 또는 직육면체에 가까워 콩돌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파도에 의해 계속적인 왕복운동을 하면서 자갈들끼리 서로 부딪치며 마모돼 매끈한 자갈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콩돌로 만들어지기까지는 해수면 상승시기부터 지금까지 약 1만8000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 길이 약 1500m, 폭 약 50m.

콩돌이 쌓여 있는 해안은 몇 개의 계단상의 둔덕을 이룬다. 이것을 지형학 용어로 범(berm)이라고 하며, 대개 해안선과 평행하게 발달해 있다.이는 해양 조건과 기상 조건에 따라 에너지의 세기가 달라지는 파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감람석 포획 현무암

<감람석 포획 현무암>

 

백령도에서도 화산활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진촌리 북동쪽에 위치한 하늬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가운데 황록색 암석이 박힌 암석이 있다. 감람석 포획 현무암이다.

약 460만 년 전 지하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지하 42~63km에 있던 맨틀 구성 물질 가운데 하나인 감람석을 붙잡아 지표로 나와 굳은 암석이다.

백령도 현무암은 진촌리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분포한다. 정확한 위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도가 높은 진촌리 성당부근이 화산 분출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람석은 맨틀을 구성하는 물질로 지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1500도의 고열에서도 잘 녹지 않는다. 맨틀에 대한 정보와 지질학 연구에 도움을 주기때문에 잘 보존해야 할 자연유산이다.

 

두무진

 

두무진은 원생대에 속하는 약 10억 년 전, 해빈 환경에서 오랜 세월 퇴적된 사암이 지하 깊은 곳에서 고열과 고압에 의해 변성된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화석이 산출되지 않아 그 생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근의 소청도 연구결과로 미루어 10억년 이상의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가장 밑에 있는 중화동층은 수심이 비교적 깊은 대륙붕의 펄이 쌓인 이암이고, 그 위엔 얕은 대륙붕에서 사암과 이암이 교대로 쌓인 장촌층이 있다. 두무진층은 조간대의 사암이 쌓인 가장 위층이다.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두무진 지층은 이후 지속적으로 지반이 상승하면서 파도와 비바람에 의해 집중적인 침식과 풍화를 받아 깍여 나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육중한 기암의 형태로 점차 육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백령도는 최후 빙기였던 약 1만 8000년 전 웅진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현재의 해수면을 유지하게 된 약 6000년 전, 저지대는 바다가 되고 잔구의 상층부만 남아 섬이 되었다.

 

두무진의 규암층은 층리의 발달 형태로 보아, 퇴적 후 단층 작용 이외의 심한 변형 작용을 받지 않았다.

하부의 퇴적물은 먼 바다에서, 상부의 모래층은 해빈 환경에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연흔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수의 영향도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퇴적층에 4.5~5m 간격으로 다른 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주기적인 해수변동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짙은 색의 층은 물이 차오르는 습한 환경에서, 옅은 색의 지층은 물이 빠진 건조한 환경에서 퇴적되었을 것이다. 

또한 하부의 모래층보다 상부의 모래층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것은 해안선이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물러나는 해퇴 환경에서 퇴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점박이물범

 

물범은 북위 45도 이북의 북극권에 사는 국제적 희귀종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만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백령도의 물범은 북위 45도 이남에서 서식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지정돼있지만 여러 위협에 놓여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늬바다 앞 물범바위, 연봉바위, 두무진 앞 물범바위 등 세곳에 주로 살고 있다.겨울엔 이동했다가 봄에 돌아와 가을까지 산다고 한다.

 

중화동 교회

 

백령도는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곳이다. 이 마을 이름은 옛날 중국 배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이곳에 기항하여 먹을 것을 마련하고 며칠 씩 묶어갔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4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의 소래 교회이다. 뒤이어 1898년 10월 9일 백령도의 중화동 한문서당에서 백령도진의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을 비롯한 몇 사람이 예배들 드리고 중화동 교회를 세웠다. 소래교회와 중화동 교회가 주목 받는 것은 선교사의 도움 없이 한국인들 스스로가 세운 자생 교회이기 때문이다.

<1910-1930년대 지도>

 

<1960년>

<참고문헌>

한국 지형 산책, 푸른숲, 이우평

우리땅 과학답사기, 살림, 손영운

한반도 자연사 기행, 한겨레 출판

<지도출처: 국토정보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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