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지리답사/서울

서울 서촌 이상범 화가 가옥

 

이상범 가옥 VR 답사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청전 이상범(1897~1972)화가 가옥,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31-4, 1930년대 지은 도시형 한옥 건물, 담에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이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에 있는 동네를 말한다. 종로구에 속하며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 창성동, 창의동, 옥인동, 통인동, 누상동, 누하동, 체부동, 필운동 등 12개의 동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 이 곳은 궁궐에 물자를 조달하던 기관인 사재감이 있었고, 각종 공방들도 많았다. 역관이난 의관 등 전문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한다. 내시들도 이 일대에 살았다.

 

경복궁 동쪽 지역인 북촌에 비해 그다지 신분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의동, 옥인동 일대까지 포함하면 서촌은 세종과 영조의 탄생지이고, 조선 후기 명문가문인 김상헌,김상용 형제가 살던 곳이다. 시조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 진경산수를 만든 겸재 정선, 조선 제일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옛집터도 찾아볼 수 있다. 근대 이후의 인물로 친일파 이완용과 윤덕영의 집터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신익희의 거처가 남아있다. 해방 공간에서 풍운을 일으킨 여걸 김수임과 앨리스 현 등도 이곳에서 살았다. 또한 근대 문학과 예술인으로 문인 윤동주, 이상, 이광수, 노천명, 서정주, 김동리, 화가로는 이중섭, 이상범, 구본웅, 이여성, 이쾌대, 천경자, 박노수 등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서촌은 북촌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없고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 못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이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주요 시설과 경복궁과 같은 문화유적으로 인해 오랫동안 층수 및 고도제한 건축규제가 심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서촌의 한옥은 대부분이 전통한옥보다는 개량 한옥이다. 개량한옥들과 새롭게 지어진 빌라, 그리고 전봇대의 전깃줄이 이곳의 삶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2014. 12. 13 서촌 답사 코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 사직단 - 단군성전 - 황학정 - 필운대 - 배화여고 생활관 - 화가 이상범의 집 - 백호정 - 화가 이중섭의 집터 - 수성동 계곡 - 윤동주 하숙집 터 - 박노수 미술관 - 통인시장 - 영화루(점심) - 대오서점 - 이상의 집 - 세종대왕 탄생지 - 쌍홍문 - 신익희 가옥 - 궁정동 안가 터 - 김상헌 시비와 집터 - 보안여관 - 창의궁터 - 백송과 추사 김정희 집터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이상범 화가의 생애<출처 : 위키백과>
충청남도 공주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옛 조선 왕가에 부설된 미술 교육 기관인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사사하고 1918년 서화미술회를 졸업한 뒤 동양화가로 활동했다. 1919년에서 1945년까지 서화협회 회원이었고, 1925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0회 연속 특선을 차지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1931년 제10회 조선전람회에서는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으며, 1935년에는 조선전람회 추천작가가 되었다. 1933년에서 1945년에는 ‘청전화숙(靑田畵塾)’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27년에서 1937년까지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광복 후 조선미술협회에 참여해 우익 미술인으로 활동했으며, 1949년에서 1961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동양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49년에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고, 1953년에서 1960년까지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7년 예술원상(예술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62년에는 문화훈장(대통령상)을 받았다. 1963년에는 3·1문화상을 수상했다.

 

화풍
그는 한국의 새로운 남종화의 방향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초기 화풍은 안중식의 산수화 중 남북종을 절충한 형태와 유사했으나, 차츰 독특한 구도를 선보이는 등 독자적인 세계로 진입했다. 흔히 고요한 향토색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표현하며, 변관식과 함께 한국적인 산수화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황량한 분위기나 짧은 붓질이 일본의 남화풍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항일과 친일 논란
동아일보에서 삽화를 그리는 미술 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는 이길용의 일장기 말소 제안에 동조하여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처음 삭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에 가담하고, 반도총후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국방헌금을 모금하기 위한 국책 기획전에 참가하여 친일 행위를 한 바 있다. 《매일신보》에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며 기고한 삽화 〈나팔수〉 등 친일 작품도 남아 있다. <출처 : 위키백과>

 

난 서촌 답사에서 무얼...?

분명 밝고 활기참은 아닌 것 같다.
힘겹고 응어리진 무언가 있었다.
눈치와 세상 흐름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포기한 듯 한 아쉬운 모습이 보였다.


왜 그랬을까? 추운 날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청와대와 문화유적때문에  개발억제와 통제에 길들어진 것일까?
뜨네기로 어느 정도 타협하고 적당히 살다 이곳을 벗어나자...분명 서촌은 변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이 곳만의 지역성을 보존할까?
서울은 참 희한하고 매력적인 곳이다.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 좀 더 많은 곳을 답사해야겠다.   

 

'한국지리답사 > 서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균관  (0) 2013.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