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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답사/페루

리마 미라플로레스 해안충적단구

 

360도 vr파노라마 답사/사진 클릭, 마우스로 클릭한 채 360도 상하좌우 돌려가며 보세요..^^ (2010년 12월 30일 촬영)

리마 공항 도착 예정 시간이 23시 55분이었으니 공항을 벗어난 시간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리마 택시 기사에게 숙소의 주소를 보여주었으나 한참을 헤매다 내려준 곳은 낯선 주택가 골목, 시간은 새벽 1시 30분, 결국 찾던 숙소는 포기하고 미라플로레스 중앙공원과 케네디 공원 부근으로 이동하여 게스트하우스를 물색하였다. 너무 늦은 시간,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행 어느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잠시 맥도날드에 짐을 풀고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다 숙소로 정한 곳은 Flying dog hostel, 굳게 잠긴 문안은 평온한 쉼터였다.

 

아침 일찍부터 산책을 나섰다. 숙소에서 해안까지 대략 1.5km, 미라플로레스 해안이다. 해안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건 안개였다. 남위 12도 36분, 서경 77도 12분에 위치하는 리마, 한류인 페루 해류는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 상승기류를 형성하지 못해 비구름을 만들지 못하는 대신 많은 안개를 만들어낸다. 리마는 분명 사막지역에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많아 습도가 높은 지역이다. 한류로 인해 습도가 높을 뿐이지 연평균 강수량은 25~50mm에 불과하다. 겨울철인 5월부터 11월까지는 ‘가루아’라고 부르는 짙은 안개로 인해 습도가 더욱 높은 시기이다. 그러고보니 몇몇 사막 거주민들이 안개를 응결시키기 위해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그물을 이용하여 물을 모아 식수와 농업용수로 이용했다는 다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리마는 물이 매우 부족한 지역이다. 마실 수 있는 물의 확보는 큰 문제이다. 페루의 고대 해안 문화를 이룩한 사람들은 안데스 계곡에서 흘러내려 지하로 들어간 물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 관개수로를 만들었다. 치무문화와 모치카문화의 관개수로와 나스카의 지하수로와 ‘오호(ojo)’라는 나선형 구멍 시설등이 그 예이다. 지금도 필요한 물은 리마크 강과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
* 찬찬 고고 유적: 페루 투르히요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15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치무 왕국의 수도,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흙으로 만든 도시, 신전, 주거지, 저수지, 관개시설 유적지등이 발견됐다. 
* 모치카 문화(모체문화): BC200~AD900년경 트루히요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고대문화.

 

비가 거의 없다보니 리마 변두리 주변에 살고 있는 도시민들의 집은 흙벽돌을 이용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엘니뇨 현상으로 이곳에도 비가 내려 리마의 남쪽에 위치한 이카 시의 많은 흙벽돌집이 물에 부서지고 녹아 사라졌다.(1998년) 비가 오지 않는 것에 익숙한 이 지역사람들에게는 작은 비에도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큰 피해를 낳았다. 또한 주변의 나스카 지상화도 폭우로 인해 팬아메리카 고속도로가 일부 유실돼 지상화 일부가 훼손되었다는 보도(2009년)도 있었다. 페루 리마 해안 6개주 폭우,홍수 위험, 여행 자제인 '황색경보'가 발령되었다는 보도(2017년)도 있었다.

 

미라플로레스 해안에서 두 번째로 접한 것은 해안 절벽의 충적층, 크고 작은 자갈과 모래가 뒤섞여 있다. 장관이다. 높이는 80미터 해안 충적 단구 지역이다. 해안 단구는 융기의 흔적이다. 노두에 나타나는 흙, 모래, 그리고 둥근 자갈이 분급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퇴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시에 쏟아 부었다고 볼 수 있다. 형성시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기후하에서 형성된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어느 시기에 지금과는 다른 건조하지 않고 비가 많은 시기가 있었고 안데스 산지에서 해안으로 대량으로 쏟아 부어 만든 충적지가 급격하게 융기하여 형성된 것이다.

 

하천의 퇴적물이 쌓인 것?
이 일대는 해안 충적 단구 지역이다. 해안 단구란 해안이나 해안선에 가까운 해저 지층이 융기(위로 솟아오름)한 것이다. 해안 쪽의 절벽이 그 흔적이다. 그것도 아직 굳지 않은 충적층이 100m나 솟아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땅의 솟구침이 진행되었다는 증거다. 대략 1년에 1cm씩만 융기했다 치더라도 100m 솟아오르는 데는 1만 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또한 땅의 융기는 일정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주 아주 빠르게, 때로는 그 활동을 멈추기도 하면서 진행된다.


미라플로레스의 해안 단구 절벽을 살펴본 바로는 이 거대한 충적층에는 진흙, 모래, 그리고 크고 작은 둥근 자갈이 뒤섞여 있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 기후 지역인데 어떻게 이런 거대한 규모의 충적 지대가 형성된 것일까? 아마도 안데스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리막 강이 이 충적 평야를 형성한 퇴적 물질들을 운반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 리막 강은 그 규모가 작아 이렇게 많은 양의 충적물을 운반할 능력이 없어 보였다. 이는 하천이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적으로 퇴적물을 운반한 것이 아니라 일시에 쏟아 부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하천이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천천히 퇴적 물질을 쌓았다면 하천의 유량 변동에 따라 비슷한 크기의 퇴적 물질들이 일정한 층을 이루며 쌓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막 강이 과거에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분명한 것은 세계의 기후는 늘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변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하천의 상황도 크게 변화해 왔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 년 전쯤에는 빙하기였고, 그 당시 세계의 기후대는 현재와는 크게 달랐다. 즉, 그 당시 리마 일대는 지금처럼 건조한 기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과거에 이 지역에는 짧지만 비가 많은 시기가 있었고, 그 당시 리막 강은 안데스에서 끌고 내려온 엄청난 양의 모래와 크고 작은 자갈 더미를 현재의 태평양 해안 일대에 쏟아 부은 것이다. 또한 빙하기에는 전 지구적으로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여m 낮았으므로 그 당시 이 지역은 바다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었다는 점도 함께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양의 크고 작은 자갈이 해안선까지 이동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출처: 지리 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최종 간빙기에 파랑에 의해 해안에 쌓인 자갈?
둥근 자갈을 포함한 퇴적층은 현재와 해수면의 높이가 비슷했던 약 8~125천 년 전인 최종 간빙기에 파랑(sea wave, 파도)에 의해 해안에 쌓인 물질로, 당시에는 역빈(gravel beach, 자갈 해안)이나 사빈(sand beach, 모래 해안)을 이루었던 것이다. 특히, 페루를 중심으로 한 남아메리카 서부 해안은 남아메리카 판(plate)과 나즈카 판이 부딪히는 수렴 경계로 육지를 이룬 남아메리카 판의 땅이 솟아 오르는 지반 융기(uplift)가 활발한 곳이다. 이로 인해, 대략 10만년 전에 해수면 부근에 있었던 자갈과 모래 해안이 전체적으로 60m 정도 고도가 높아져 해안단구(marine terrace: 과거 해수면 부근에서 형성된 평지가 지반 융기로 솟아 올라 현재 해수면보다 높은 고도에 위치하게 된 계단 모양의 평탄한 지형)로 불리는 지형을 형성하게 되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는 10만년 전 무렵에 바다였던 해안단구에 세워진 도시이다. 해안단구 퇴적층은 단단하지 않아서 해안단구 단애(절벽)에서 자갈이 쉽게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지금은 절벽 아래 해안 도로로 떨어지는 낙석을 막기 위해 절벽에 낙석 방지 그물을 쳐 놓았다.(출처: 이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