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리답사/알바니아: 2개의 글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Posted by 지오VR
2015.09.13 14:30 세계지리답사/알바니아

 

<사진 클릭하시면 360도 VR Panorama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식사시간 전 잠깐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의 중앙대로를 산책하였다. 호텔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니 타이완 광장, 이글루 모양의 벙커, 그리고 호자의 딸이 지었다는 피라미드 건물, 너무 한적한 대통령궁, 마더 테레사 광장, 알바니아 정치대학 등...

 

 

<사진 출처: 구글 검색>

첫 번 째로 발길이 멈춘 곳은 이글루 모양의 벙커, 대통령궁과 정부청사, 국회사이, 중앙대로와 이스마일 Qemali 거리의 코너에 위치하고 있다. 벙커는 엔버 호자시대에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공격하자 알바니아는 바르샤뱌 조약에서 탈퇴하고 자체 방어 정책으로 전국 곳곳에 75만개의 벙커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이스마일 케말리(알바니아 독립운동가)동상, SPAC 수용소(알바니아 공산주의 정치적 감옥)의 콘크리트 기둥과 베를린 장벽의 조각을 갖추고 있었다.

 

* 호자(1908~1985) : 알바니아 민족해방전선, 알바니아 공산당 창건, 알바니아 공산주의 정당 노동당 총서기, 독재자, 폐쇄정치, 무신론 국가 선언

 

 

베를린 장벽의 조각 -촬영 이수현-             이스마일 케말리(알바니아 독립운동가) -촬영 이수현-

                                                                                                               

바로 옆에 소박하게 보이는 대통령궁, 1928년부터 10년 동안 들어섰던 알바니아 왕국의 아호메트 조그1세가 왕궁으로 쓰려고 짓다가 2차대전 때 점령군으로 온 이탈리아군에게 폐위 돼 쫓겨난 뒤 이탈리아 총독 관저로 쓰였다고 한다. 문패(?)도 없었고, 지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무슨 건물일까 궁금할 정도로 평범한 대통령 집무실이었다.

 

 

 

피라미드 건물은 Enver Hoxha의 딸의 디자인에 따라 1987년에 호자의 기념 박물관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이 건물 앞에서 연설을 했던 곳이고, 현재는 TV 방송국으로 사용하다가 버려진 건물이다. 외관의 대부분은 유리 파손, 낙서가 가득한 벽면, 진입로의 깨진 보도블럭, 흉물로 남아있었다.

 

 

 

에템베이 모스크(Mosque of Ethem Bey)
터키 지배 시절 1789년 몰라 베이에 의해 시작되어 1823년 그의 아들 에템 베이에 의해 완공되어 그의 이름을 따왔고 한다. 종교의 자유가 없던 공산주의 시절에는 폐쇄되었다가 1991년 공산당이 몰락한 후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알바니아는 1967년 세계 최초로 공식 무신론 국가 선언을 했었다. 당시 독재가 엔베르 호자의 명령으로 모든 교회와 모스크가 파괴되거나 운동경기장이나 창고 같은 시설로 개조되었다. 실내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었다. 어느 모스크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이곳에는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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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크루예

Posted by 지오VR
2015.09.12 20:51 세계지리답사/알바니아

크루예

<사진 클릭하시면 360도 VR Panorama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알바니아에 도착해서 첫 답사지는 크루예(Krujë, 크루야: Kruja)다. 알바니아어로 "샘"을 뜻한다고 한다. 수도 티아라에서 북쪽으로 공항을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 밖 멀리 산등성이에 도시가 보였다. 나는 그 곳이 크루예임을 직감하고 주변에 있는 일행들에게 말했는데, 대부분 미심쩍은 얼굴이다. 무슨 근거로? 마케도니아에서 온 가이드조차 반응이 별로다.


내가 '크루예'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이유는, 답사 출발하기 전, 크루예의 위치를 구글어스로 파악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북서방향으로 발달한 산지와 확연히 드러나는 단층선 그리고 크루예의 배경이 되고있는 대략 1150m 높이의 산과 여기 저기 파헤쳐진 큰 구덩이... 난 그 구덩이를 석회암 광산으로 추정하였고, 부근에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멘트 공장을 찾아보았는데, 상당한 규모의 공장이 있었다. 이곳에 석회암이 나타나리라 추정한 이유는 ‘카르스트’ 용어와 알바니아의 ‘알바’의 유래 때문이다. 



         


카르스트라는 말은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 지방의 독일어 명칭이다. 이 지방에는 중생대에 형성된 석회암이 두텁게 분포하여, 용식에 의한 지형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연구가 최초로 진행되어, 후에 같은 종류의 지형을 나타내는 통칭으로서 ‘카르스트’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발칸반도 북쪽에 위치한 슬로베니아로부터 이곳까지 디나르알프스산맥의 연장선이다. 이곳도 석회암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알바니아를 거쳐 마케도니아 그리고 그리스까지 가는 여정 속에서 석회암은 계속 볼 수 있었다.


 

 알바니아의 ‘알바’는 라틴어의 ‘하얀’과 관계가 있고, 로마인들이 일찍이 석회암 지대가 많아서 ‘하얀 나라’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알바니아가 되었다고 설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이와 연관시켜, 내가 대단한 지리학자인양 잘난 체 했던 것인데... 현지 운전기사의 시멘트 공장이 있다는 발언이 있고나서야 나의 말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크루예 뒤쪽의 산체는 아침 안개로 흐릿하지만 분명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크루예에서 하루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인 모습은 석양의 햇빛을 받아 확연하게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크루예는 1190년 알바니아인이 최초로 세운 민족 국가인 아르버르 공국(1190년 ~ 1255년)의 수도였으며 그 뒤에는 중세 알바니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지만 1443년부터 1468년까지는 알바니아의 영웅, 스칸데르베그 장군이 지배하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군대를 수십차례 물리친 역사적인 장소이다.


스칸데르베그 박물관

 스칸데르베그 장군은 중세 알바니아의 민족영웅이다. 북알바니아의 호족 기온 카스트리오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430년경, 부친이 오스만제국의 종주권을 받아 들였으므로 당시의 관습에 따라 형들과 함께 오스만 궁정에 인질로 잡혀갔다. 그 곳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시종으로서 근무하였다. 무용(武勇)이 뛰어난다는 점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름과 관련된 스칸데르라는 이름을 수여받았으며 군사령관(베그)으로서 종군하였다. 그는 1437년경 아버지의 영지 티마르(timār, 군사봉토)를 수여받고 시파히(기사)로서 고향에 돌아왔다.

 1443년 오스만제국군이 헝가리의 민족영웅 프냐디·야노슈와의 분쟁을 틈타서 민족독립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그리스도교도로 개종하여 북알바니아를 통일하였다. 이후 25년 간, 나폴리 왕국, 로마 교황, 베네치아 등의 원조도 얻어, 오스만제국군으로부터 국토를 지켰다. 1468년에 그가 병사하자, 알바니아는 다시 오스만제국에 합병되었으나 그의 저항정신은 민중 사이에 전해졌다.

 19세기 이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사상이 높아지자, 스칸데르베그는 알바니아의 민족영웅으로서 서사시와 전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특히, 알바니아 국민문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나임·프라샤리의 『스칸데르베그의 이야기』(1896)와 팬·노리의 『스칸데르베그의 역사』(1921)는 알바니아인의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





알바니아는 알바니아어로 슈치퍼리아(Shqipëria), 슈치프는 독수리를 의미한다. 알바니아 국기에는 독수리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스스로 독수리의 후손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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