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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리답사/전북

천호동굴 이야기


천호동굴은 어디에 있나?


전라북도 익산군 여산면 호산리 산1-65
수리적 위치 북위 36° 3′ 4.45″ 동경 127° 7′ 10.73″


천호동굴 가는 길은 관리 소홀로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자동차 진입이 불편하다. 가는 방법 첫 번째는 여산면 소재지에서 완주군 화산면으로 연결되는 740번 지방도로 가다 천호터널(2013년 개통) 약 350m 못미쳐 오른쪽에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천호동굴 안내판에서 오른쪽 비포장 길로 갈 수 있다. 4륜 자동차나 갈 수 있는 울퉁불퉁한 도로이기 때문에 운전에 주의를 요한다. 안전을 위해 차를 주차하고 이 길을 따라 250여m 걸어가면 왼쪽에 천호동굴 출입통제 협조문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70여m 가면 녹색 펜스로 둘러싸인 천호동굴 입구가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여산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2km 위치해 있는 여산 천호주유소에서 좌회전 호산길로 가다 호남고속도로 밑을 통과한다. 통과 후 외사마을을 지나, 호월마을 경로당을 지나 호를 그리며 깊숙이 들어가면 외딴 집 한 채(천호산 등산로쪽 아님 주의), 조금 더 가면 왼쪽에 석회비료제조공장 표지석을 볼 수 있고 오른쪽에 익산석회공업사 표지석과 채석장 통제구역 출입금지 쇠사슬이 쳐진 정문이다. 외딴 집에서 100m 거리는 여름철 빗물에 파인 도로가 정비 되지 않아 차량 통행시 주의를 요한다. 정문에 주차하고 70m 걸으면 천호동굴 출입통제 협조문 안내판이 있다.


고문헌과 고지도의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1611년)


『신증동국여지승람』(1611년) 34권 여산군 산천(山川)조에 호산(壺山)은 군의 동쪽 5리에 있으며 진산이다. 누항(漏項) ‘군의 동쪽 7리에 있는데, 고산현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스며들어 호산 산록의 땅속으로 흘러 호산 서쪽으로 나오는데, 물이 나오는 구멍이 1장 정도 된다. 속칭 용추(龍秋)라 전하고 날이 가물면 비를 빈다’ (在郡東七里有川 出高山縣西流 漏入壺山麓伏流 達西麓爲川 穴圓徑丈餘 諺傳龍湫天旱禱雨)라고 기록되어 있다. 

『익산향토지Ⅲ』에 의하면 구여산군지에서 천호동굴을 풍혈이라 불렀다고 소개하고 있다. 바람굴(풍혈 風穴)은 1965년 7월에 논산석회에서 세운 여산면 호산리 남북교회의 황성호 목사가  발견하고 천호동굴이라 이름을 붙이면서 알려졌다고 하나 고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도 이미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고 어디로 나오는 가를 알고 있었다. 

발견된 이후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산악부에 의해서 1965년 8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 동안 탐사작업(12명)이 이루어지고, 건국대학교의 최무웅 조사팀에 의해서 1993년 8월15일부터 11월15일까지 3개월간에 걸쳐 10차례의 현지 조사 후 「천호동굴 학술조사 보고서(天壺洞窟 學術調査 報告書)」가 나왔다. 

익산 천호동굴 (益山 天壺洞窟, Cheonhodonggul Cave, Iksan)은 1965년 7월초에 발견되었고 1966년 3월 2일, 천연기념물 제177호로 지정 등록되었다.

천호동굴 학술조사 보고서

「천호동굴 학술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천호동굴 주굴의 총 길이는 687m이다. 동굴은 지질구조선과 일치하는 선형으로 비교적 평탄한 경사를 갖고 있는 하천형 동굴이다. 동굴의 평균 천정 높이는 3~4m이며 폭은 2~3m로 3개 지점에서 1m 미만의 낮은 천정이 있으나, 출입에는 지장이 없는 안정된 동굴지형이라고 한다.


동굴 2차 생성물은 11개 종류가 나타나는데, 그 중 유석 및 동굴산호와 진주가 가장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수정궁까지는 종유석과 석순이 파괴되었으나, 수정궁을 지나면서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동굴 경관은 대단히 아름다우며 매우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동굴 내부에는 다량의 동굴 지하수가 유출되고 있으며, 이는 출구(제2입구)인 누항에 있는 돌리네, 싱코홀에서 유입된 물로 동굴 내에서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고 한다. 씽크홀에서 들어온 점토 및 모래가 쌓여있으며, 모래가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볼수 있는 ‘살아있는 동굴’이라할 수 있다.

동굴 형성 요인

천호동굴의 생성연도는 약 4억 ~ 2억 5,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모암은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약 4억년 전) 조선계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의 석회암과 석회암층의 변성퇴적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천호동굴 주변의 지질도(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옥천군창리층 석회암 협재)


누항 출구 쪽에 발달된 돌리네와 싱크홀 등을 통해서 지표면의 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고 지각변동으로 생긴 석회암층의 절리를 통하여 지하수는 탄산칼슘을 녹여 지하 동굴을 크게 성장시켜 석회동굴이 생성되었다. 

천호동굴(사진출처:문화재청)


천호동굴 내부에는  동굴 내부는 심한 굴곡을 이루며 고드름 모양의 종유석과 죽순처럼 솟아오른 석순,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맞닿은 석주가 발달하였다. 동굴 중간 부분에는 높이 약 30m, 너비 약 15m의 큰 구덩이의 중앙 정면에 높이 20m, 지름은 5m가 넘는 순백색의 커다란 석순 있는 수정궁으로 불리는 넓은 공간이 있다. 동굴 바닥 한 구석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데 비가 오면 물이 불어나 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박쥐를 비롯하여 꼽등이, 딱정벌레, 톡토기 등 많은 동굴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협곡 통로 등 미세한 지형이 발달하여 있으며, 가리비 조개 모양의 침식구조도 유명하다. 발견 초기 입장객들에 의해서 많이 훼손되어, 1970년 3월 31일 긴급 폐쇄조치가 결정되었고, 문화재청에서 2011년부터 ‘천연기념물 공개제한 지역’으로 지정해 동굴 생성물 등의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하고 있다.

천호동굴(사진출처:문화재청)


동굴 가까운 곳에 석회암을 채굴하여 석회비료를 만드는 논산석회와 익산석회공업사라는 회사가 92년 6월부터 97년 6월까지 석회비료를 생산하는 석회석을 채취하였다. 발파작업으로 인한 동굴 훼손우려와 마을 주민들의 민원으로 결국 2000년대 초반 가동이 중단되면서 채석장과 공장 및 사무실 건물이 흉물스런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석회비료공장


2004년 8월에 누항쪽 출구(제2입구)를 돌리네를 답사했을 때 폭우로 인해 싱크홀이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주변에 목장이 있어 축산폐수가 동굴 내부로 유입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2013년부터 문화재 보호구역 조정과 토지매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동굴주변 오염원인 축사를 철거하고 주변 임야지역의 식생복원을 위해 초지를 조성했다.

 

분수계 너머에 있는 누항마을과 지명 유래?

일반적으로 분수계가 행정 구역의 경계가 되는데 이 곳의 시군 경계가 되고 있는 곳은 특별한 기준이 없는 듯이 보인다. 산줄기는 누항재(작은독고개), 천호산으로 이어지는데 분수계 넘어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누항마을이 완주군이 아닌 익산시 여산면에 속한다. 누항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에서 행정구역의 경계가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누항(漏項)’의 원래 이름은 시어목, 시여목, 세목, 샐목 등으로 불리었는데, ‘샐목’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샐 누(漏), 목 항(項)이다. 물이 새어 들어가는 좁은 목이라는 의미다. 누하(漏下)마을은, 아래로 새어 들어간다는 뜻이다. 누항이라는 지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지표에 내린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복류(伏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서쪽 호월마을로 물이 나온다는 점이다.


누항 마을 지표면을 흐르는 하천은 동쪽 고산천 방향이다. 땅속으로 스며든 지하수는 복류하여 분수계 넘어 남서쪽 호산리를 거쳐 강경천으로 흘러간다. 이 지역은 지표수와 지하수의 흐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곳의 행정구역의 경계는 예나 지금이나 지하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명 유래

익산시 여산면(礪山面)의 여(礪, 숫돌 려)는 숫돌을 의미한다. 대리석은 석회암이 열과 압력을 받아 변한 변성암으로 석재와 비석, 숫돌, 다듬이돌 등으로 이용된다. 이 지역이 석회암 지대임을 알려 준다.

여산면에는 호산(壺山), 호월(壺月), 누항(漏項), 천호산(天壺山)등의 지명이 있는데, 호(壺, 병 호)는 유리병의 안과 같이 비어있는 공간이 있다 뜻으로 석회암지대에 나타나는 석회동굴과 관련이 있다. 

동국여지지(1656년)


호산이 천호산으로 변경되는 과정을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유형원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찬 전국지리지 『동국여지지』(1656년)에는 호산(壺山)은 군의 동쪽 8리에 있는데, 진산이다. 일명 문수산(文殊山)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당시 호산의 다른 명칭으로 ‘문수산’이 있었음을 알수있다.

해동여지도(1724년)
여지도서(1757년)


『해동여지도』(1724년) 여산부(礪山府) 지도에는 ‘천호산’으로 표기하고, 여백에 ‘호산은 군 동쪽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기재하고 있어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1757년) ‘천호산’, 『청구도』(1834년) ‘문수산’, 『대동여지도』(1861년) ‘문수산’, 『1872년지방지도』 ‘천호산’이 기재되어있어 18세기 초경에 호산이 ‘천호산’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1861년)

 

1872년 지방지도

여산면 태성리 지명이 일제의 잔재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으나 1872년 지방지도에 누항리(漏項里)와 태성리(台星里)가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1916년 측량 1936년 발행 지형도


호산이 천호산으로 변경된 이유를 천주교와 관련지어 말하곤 하는데, 천호마을에 천주교 신자들이 거처를 시작한 시기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이고, 해동여지도(1724년)와 여지도서(1757년)의 천호산 표기는 기해박해 이전인 점으로 보아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천호산 남쪽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는 천주교의 성지인 천호(天呼)성지가 있다. ‘천호’(天呼) 마을은 “천주(天主,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간다”는 뜻을 지닌 천주 교우들의 거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천호의 호(壺)를 호(呼)로 변경된 것은 천주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2004년 답사시 누항 마을을 가기 위해 작은독고개(해발 270m)를 넘어가야 했다. 현재는 740번 지방도가 천호터널완공으로 2013년 5월에 개설되었다. 


<참고문헌>
최무웅, 1993, 천호동굴(天壺洞窟) 학술조사 보고서, 건국대학교 환경과학연구.
조성욱, 사람과 언론. 제9호 (2020년 여름호), p. 175-187, 전북대 지리교육과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원문검색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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