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적 답사

Posted by 지오VR
2018.04.14 08:22 고구려

고구려 유적 답사

2005년, 2007년 두차례 고구려 유적 답사 중에 촬영한 360 VR PANORAMA 입니다.(사진을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광개토왕비, 환도산성, 산성하고분군, 국내성, 오회분, 장군총, 장군총배총, 졸본성(오녀산성), 상고성자고분군, 하고성자성지, 하고성자성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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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주 빅아일랜드 칼라파나

Posted by 지오VR
2018.02.16 11:31 세계지리답사/미국


    사진을 클릭하면 360도 vr파노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무슨일이?

    도착하기 몇일 전 하와이주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하와이가 탄도미사일 위협에 처했다. 즉각 대피하라, 훈련이 아니다’라는 경보가 휴대전화를 통해 발령됐기 때문이다. 경보 오류로 판명났지만 상상 이상의 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화산국립공원 가는 날, 바로 그 날 셧다운이 발표되었다. 국립공원이 폐쇄되었다. 갈 수 없었다. 대안으로 찾은 곳은 칼라파나 마을, 그리고 이틀 뒤 셧다운은 해제되었다.

    ...

    헬기투어 하는 날, 용암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헬기를 타기 위해 교육도 받았고, 좌석배치가 까지 끝나고 헬기장 앞까지 왔는데, 기상이 좋지 않아 취소란다.

    결국 붉은 용암은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싸늘하게 식어 있는 용암대지 칼라파나는 붉은 용암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었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엄숙하고 숙연한 엄청난 장관이었다. 용암이 사람들의 생활터전을 덮었다.

    하와이 마지막 날 밤, 어텐션 어텐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비상계단을 이용해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복도에 가득했다.
    비상 계단은 호텔 투숙객으로 꽉 차서 내려갈 수 없었다...
    소방차가 밑에 왔다는 등 말만 떠돌더니 더 이상 안내 방송이 없다.
    오작동은 아닌 듯 한데...
    웅성 웅성...
    하나 둘 다시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 하와이 모든 VR 파노라마는 장비 없이 손각대로 촬영되었음. 첫번째 VR은 당시 뉴스영상이 포함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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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다랑쉬 오름(월랑봉)

Posted by 지오VR
2018.01.19 10:33 한국지리답사

<사진을 클릭하면 드론으로 촬영한 360vr 파노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오름의 규모, 형태, 사면경사, 분화구 등의 특징을 종합해 볼 때 제주의 대표 오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발 382m, 비고 227m로 이 일대에서는 높은 오름 다음으로 큰 규모다. 지형학적으로는 제주의 대표적 단성화산(한의 큰 화산체 주변에 2차적으로 분출한 독립된 화산체, 측화산, 기생화산)으로서 화산학적 분류상 화산쇄설구, 그 중에서도 분석구에 해당된다. 그리고 분석구 중에서도 분화구가 존재하는 스코리아콘에 속하는데, 특히 이 다랑쉬 오름은 거대한 화산체에도 불구하고 스코리아콘의 현태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하다.


다랑쉬 오름을 오르는 것은 경사가 있어 처음엔 숨이 차다. 등산로 초입의 숲을 통과하면 지그재그 등산로를 만들어 놓아 쉬엄쉬엄 오르면서 주변 풍경을 보며 올라 정상에 서면 대단한 감흥을 얻을 수 있다. 처음 다랑쉬 오름을 오를 때는 거의 일직선으로 오른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백록담 크기의 분화구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피로는 사라져 버린다. 뿐만 아니라 멀리 한라산, 성산일출봉, 우도 그리고 수많은 오름을 볼 수 있다. 다랑쉬 오름 서쪽방면으로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처럼 보이는 활주로가 보인다. 한때 온천 리조트 계획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의 흔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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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드론날리는 방법

Posted by 지오VR
2018.01.12 16:47 기타

미국내에서 드론을 날리기 위해선 미국인이나 외국인이나,

취미로 드론을 날리더라도, 드론을 등록하지 않고 날리면 벌금 최고 27,500달러(환화 약 3천3백만원)를 물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법적 소송으로 취미용 드론은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관련 글 링크 https://blog.naver.com/delighter_s2/221138308556)

 

의무사항은 아닌 듯 하지만 드론 제한구역이나 금지구역에서의 비행은 법적 소송 및 제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날릴 수 있는 장소는 앱 B4UFLY 을 통해 꼭 해야합니다. 그리고 기상조건도 고려해야합니다. 

미국은 소형비행기, 헬리콥터 등 항공교통이 발달해 있기때문에 비행 금지, 제한구역이 많습니다. 

기상도 고려해야합니다. 시야가 흐리고 바람이 많은 날은 꽝입니다. 


간단하게 등록방법 알아 보겠습니다.등록 방법이 어렵지 않고 비용도 저렴(?) 5달러, 3년간 유효합니다.

 

미연방항공국(FAA) https://faadronezone.faa.gov/ 에서 등록하면됩니다.

 

 

 

계정 만들기

이메일, 패스워드(8자이상 대소문자, 숫자, 특수문자 포함되어야함

 

 

 

등록한 이메일로 컨펌 메일이 옵니다.

 

 

이메일로 받은 편지함에 Confirm your account with the FAADroneZone 메일이 옴

받은 이메일의 링크를 클릭하여 계정을 활성화하여(Click the link below to activate your account.)

 

 

동의하면

등록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하라고 뜹니다.

 

 

 

이제부터는 개인 프로파일을 넣고

 

 

 

마지막으로 신용카드로 5달러 결제하면 끝납니다.

인증번호가 나타납니다

 

 

 

이메일로도 인증 파일을 보내줍니다.

 

 

왼쪽 부분을 잘라 드론에 붙이면 됩니다.

 

드론을 등록했다고 아무곳에서 마음껏 날릴 수 없습니다.

121.92미터 미만, 시계비행, 공항근처 비행금지, 사람 많은 곳 비행 금지, 경기장 및 스포츠 행상장 비행금지, 위급상활 지역 비행금지

국립공원 비행금지....미국은 소형비행기, 헬리콥터 등 항공교통이 발달해 있기때문에 비행 금지, 제한구역이 많습니다.

 

꼭 그 날리고자 하는 지역의 법규와 앱을 통해 확인하고 날리셔야합니다.

안드로이드 기준 앱은 B4UFLY 또는 UAV Forecast  에서 비행 가능지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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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원 큰엉해안

Posted by 지오VR
2018.01.09 09:03 한국지리답사

360도 vr파노라마(사진 클릭)

 

해식애, 해식와지, 해식동, 해안단구, 튜물러스등의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큰엉’이란 제주도 사투리로 ‘큰 언덕’이라는 뜻인데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바다를 집어 삼킬 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언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큰엉은 해식와지를 뜻한다. 해식와지란 파식대와 해식애가 만나는 경계에서 해식동굴이 발달하는 초기에 형성되는 지형이다.

 

해식와지 바닥에는 튜물러스도 관찰된다. 용암이 지표면을 흐르다 앞서가는 용암의 흐름 속도가 느려지면서 뒤따르던 뜨거운 상태의 용암이 앞서가는 용암에 압력을 가하면 압력을 받은 부분의 용암이 거북의 등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식게되는데 이를 튜물러스라고 한다.

 

해안절벽 위쪽의 평평한 지형은 해안단구로 리조트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곳은 올레길 5코스로 해안절벽 위에 나무 난간으로 안전대를 설치한 약 1.5km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산책로의 넓은 잔디밭과 푸른 소나무 사이로 벤치가 마련되어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제주국제공항으로부터 42.7km, 서귀포시내로부터 24km 거리에 있다.

 

* 해식애: 해안절벽  * 파식대: 해안애 앞쪽에 발달한 해안침식지형  

Namwon Keuneong Promenade, where the untainted coastal scenery of the south is hidden, is so named because it is a hill where a large boulder sits with its mouth wide open, as if to swallow nature whole. The 200m coastal cliff is made of lava chunks that resemble a turtle’s shell. The cliff, as well as the blue ocean that unfolds underneath it, combine to create a fantastic sight. The grass is soft, cozy, and lush, while the sound of waves crashing onto the massive rocks is sure to refresh the heart and mind of any visitor. Motorboats can be seen racing on the vast ocean, and there are rocks on the seashore where visitors may fish, making it ideal for anyone wanting to enjoy peace and qu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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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Posted by 지오VR
2017.04.23 16:02 한국지리답사

360 VR 파노라마 보기 사진클릭


백령도

두무진, 사곶 천연 비행장, 남포리 콩돌해안, 진촌리 감람석 포획 현무암 등 특이한 지형과 지질 현상이 나타난다.

고구려 때는 섬 모양이 고니 또는 고니가 많아서 곡도(鵠島)라 했다한다. 이후 고려 시대에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펴고 나는 형상과 같다 하여 백령도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고려 초 1018년(현종 9년)부터 조선 후기까지 백령수군진을 있었던 현재의 백령면사무소가 있는 부근은 진촌이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심청전의 인당수가 두무진과 장산곶 사이에 있고, 연꽃이 떠내려왔다는 연화리 등을 바탕으로 심청전의 무대라고 홍보하고 심청각을 세워 관광지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 전파 산실 자생교회인 중화동 교회가 있고 한반도 유일한 물범 서식지가 있는 곳이 백령도이다.


사곶 천연 비행장

<1960년대>


길이 약 3km, 폭 약 300m의 사곶 해안, 규암이 오랫동안 해수에 침식되어 만들어진 고운 입자의 모래가 파도 에너지가 약한 만에 쌓여 형성된 것이다.

규암 직경이 0.3mm에도 못미치는 가는 모래는 석영이 주성분으로 바닷물을 머금으면 단단해져 대형 버스도 해변을 다닐 수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비상 활주로로 이용하기도 했다한다. 70년대 콘크리트 장벽 설치, 90년대에 간척공사로 인해 바닷물의 흐름이 변해 점토질 퇴적물이 바다로 쓸려나가지 못하고 사곶해안으로 몰려들어 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콩돌 해안

<콩돌해안 범(BERM)>


백령도를 이루는 암석의 3분의 2는 사암이 변성되어 만들어진 규암과 변성셰일이다. 규암은 대부분 석영으로 이루어저 화학적 풍화에 강해 자갈로 남기가 쉽다.

단층과 절리에 의한 파쇄작용으로 부서진 규암 조각이 정육면체 또는 직육면체에 가까워 콩돌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파도에 의해 계속적인 왕복운동을 하면서 자갈들끼리 서로 부딪치며 마모돼 매끈한 자갈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콩돌로 만들어지기까지는 해수면 상승시기부터 지금까지 약 1만8000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 길이 약 1500m, 폭 약 50m.

콩돌이 쌓여 있는 해안은 몇 개의 계단상의 둔덕을 이룬다. 이것을 지형학 용어로 범(berm)이라고 하며, 대개 해안선과 평행하게 발달해 있다.이는 해양 조건과 기상 조건에 따라 에너지의 세기가 달라지는 파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감람석 포획 현무암

<감람석 포획 현무암>


백령도에서도 화산활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진촌리 북동쪽에 위치한 하늬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가운데 황록색 암석이 박힌 암석이 있다. 감람석 포획 현무암이다.

약 460만 년 전 지하에서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지하 42~63km에 있던 맨틀 구성 물질 가운데 하나인 감람석을 붙잡아 지표로 나와 굳은 암석이다.

백령도 현무암은 진촌리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분포한다. 정확한 위치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고도가 높은 진촌리 성당부근이 화산 분출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람석은 맨틀을 구성하는 물질로 지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1500도의 고열에서도 잘 녹지 않는다. 맨틀에 대한 정보와 지질학 연구에 도움을 주기때문에 잘 보존해야 할 자연유산이다.


두무진


두무진은 원생대에 속하는 약 10억 년 전, 해빈 환경에서 오랜 세월 퇴적된 사암이 지하 깊은 곳에서 고열과 고압에 의해 변성된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화석이 산출되지 않아 그 생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근의 소청도 연구결과로 미루어 10억년 이상의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가장 밑에 있는 중화동층은 수심이 비교적 깊은 대륙붕의 펄이 쌓인 이암이고, 그 위엔 얕은 대륙붕에서 사암과 이암이 교대로 쌓인 장촌층이 있다. 두무진층은 조간대의 사암이 쌓인 가장 위층이다.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두무진 지층은 이후 지속적으로 지반이 상승하면서 파도와 비바람에 의해 집중적인 침식과 풍화를 받아 깍여 나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육중한 기암의 형태로 점차 육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백령도는 최후 빙기였던 약 1만 8000년 전 웅진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현재의 해수면을 유지하게 된 약 6000년 전, 저지대는 바다가 되고 잔구의 상층부만 남아 섬이 되었다.


두무진의 규암층은 층리의 발달 형태로 보아, 퇴적 후 단층 작용 이외의 심한 변형 작용을 받지 않았다.

하부의 퇴적물은 먼 바다에서, 상부의 모래층은 해빈 환경에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연흔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수의 영향도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퇴적층에 4.5~5m 간격으로 다른 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주기적인 해수변동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짙은 색의 층은 물이 차오르는 습한 환경에서, 옅은 색의 지층은 물이 빠진 건조한 환경에서 퇴적되었을 것이다. 

또한 하부의 모래층보다 상부의 모래층의 두께가 두꺼워지는 것은 해안선이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물러나는 해퇴 환경에서 퇴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점박이물범


물범은 북위 45도 이북의 북극권에 사는 국제적 희귀종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만 마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백령도의 물범은 북위 45도 이남에서 서식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지정돼있지만 여러 위협에 놓여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늬바다 앞 물범바위, 연봉바위, 두무진 앞 물범바위 등 세곳에 주로 살고 있다.겨울엔 이동했다가 봄에 돌아와 가을까지 산다고 한다.


중화동 교회


백령도는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곳이다. 이 마을 이름은 옛날 중국 배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이곳에 기항하여 먹을 것을 마련하고 며칠 씩 묶어갔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4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의 소래 교회이다. 뒤이어 1898년 10월 9일 백령도의 중화동 한문서당에서 백령도진의 참사 벼슬을 지냈던 허득을 비롯한 몇 사람이 예배들 드리고 중화동 교회를 세웠다. 소래교회와 중화동 교회가 주목 받는 것은 선교사의 도움 없이 한국인들 스스로가 세운 자생 교회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한국 지형 산책, 푸른숲, 이우평

우리땅 과학답사기, 살림, 손영운

한반도 자연사 기행, 한겨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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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

Posted by 지오VR
2017.04.22 16:22 한국지리답사

360 VR파노라마 보기 (사진클릭)

옥죽동 해안사구

가로 1km, 세로 500m 규모로 검은낭큰산(206m) 북쪽 산등성이의 80m까지 뒤덮고 있다.

대청도는 원생대 12억~10억 년 전에 형성된 변성 퇴적암인 규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규암이 지표에 노출된 후, 바닷물에 의한 오랜 침식과 풍화로 모래가 된 것이다.

대청도 해안은 전체적으로 암석해안인데, 

곶과 곶사이 만에는 모래가 쌓여 옥죽동해수욕장, 농여해수욕장등 여러개의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해수욕장의 모래가 바람을 타고 산등성이까지 이동해 쌓인 것으로

북서풍이 강한 겨울철에 성장이 두드러진다.


<농여해수욕장 고목바위(구멍바위)>


농여해안에는 습곡 작용을 받아 크게 휘어져 있는 규암층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규암이 파랑과 조류에 마식되어 모래가 생성되고 이 모래들은 다시 파도에 이끌려 해안에 공급된다.

또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의 흐름으로 보아 백령도 쪽에서 상당한 양의 모래가 운반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해안사구는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해안 지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해안사구는 후빙기 해안수면 상승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현재의 해수면을 유지한 6000년 전 이후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리학자 서종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해수면 변동 과정을 고려해 볼 때, 옥죽동 해안사구 또한 약 1000년 전에 형성된 신두리 해안사구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사구는 사방조림 사업으로 예전처럼 모래가 풍부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식생들이 자라나 사구의 모양도 바뀌고 있다.


대청도는 동백나무 북한계선에 해당한다.

사탄해수욕장에서 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부근에 동백나무 60여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백령도에도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어 북한계선이 북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청도의 역사적 기록은 <고려사>와 <택리지>에 나온다.


<고려사> 1280년 충렬왕2년 원나라 황제의 아들 애아적이, 1324년(충숙왕 2년)에는 패자태자가 대청도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330년(충혜왕 1년) 원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순제가 태자 시절, 11세의 나이에 계모의 계략으로 대청도로 유배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청도에는 순제가 태자 시절 600여명의 식솔과 함께 처음 대청도에 발을 내린 곳이라는 옥자포(지금의 옥죽동), 대청초등학교 자리가 당시 궁궐터였다고 하며, 이곳에서 발견되는 기와는 모두 중국기와라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 황해도편에는 "황해도 장연 남쪽 바다 복판에 대청, 소청 두 섬이 있는데, 그 둘레가 꽤 넓다. 원나라 문종이 순제를 대청도에 귀양 보낸 일이 있다. 순제는 집을 짓고 살면서 순금 부처 하나를 봉안하고 매일 해가 돋을 때마다 고국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도했는데, 얼마뒤 돌아가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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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
    • 2017.05.18 14:11 신고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저는 지구과학수업을 하는데 지리는 도통 약해서 ... VR로 수업을 해보려고 하는데 멋진자료 감사합니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Posted by 지오VR
2017.04.06 20:26 한국지리답사

 

360 VR파노라마 보기, 사진 클릭

 

고려 중기를 지나면서 지방 도시의 중심이 산성 밑 도는 완전 평지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이르면 일반화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배산임수의 입지가 많지 않았으며, 특히 풍수는 지방 도시 입지의 중요한 논리가 되지 않았다.

 

1360년대부터 경상도의 해안가를 중심으로 성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해자가 갖추어지지 못해 대규모 외적의 침입에 방어하기 어려운 평지 또는 평지+산지에 걸친 '한국적' 읍성이 자발적으로 축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고려 말과 조선 초를 거치면서 왜적과 홍건적의 침입에 대한 산성방어론과 읍성방어론이 논쟁을 겪다가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때부터  읍성방어론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때부터 그동안 고을의 중심지 또는 중심적 상징으로 이해되었던 산성은 고적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며, 국가가 적극적 관여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및 충청도 해안 고을을 중심으로 읍성을 대대적으로 축조한다. 이와 같은 방향 전환 속에서 국가는 조선의 지방도시인 읍치의 조영에 '조선적'인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낸다.

 

세종 때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읍성의 위치 선정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였는데, 중앙에서 전문가가 직접 파견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때 읍치의 입지 선택에 가장 중요한 논리가 된 것은 한양에 적용되었던 풍수였다. 예를 들어 전라도 낙안 읍성의 경우 1424년에 처음으로 축조되는데, 입지 선택에 중앙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원래 낙안군의 중심지가 있었던 현재의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에서 풍수적 입지에 적합한 현재의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지역으로 읍치를 옮긴다. 또한 낙안읍성의 간선도로망과 상징 경관 역시 수도인 한양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만든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가장 중요한 낙안읍성의 남문에서 시작되는 남북 도로는 동문과 서문을 잇는 동서 도로와 만난 후 서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북쪽으로 꺾어 바라 보아야만 한양의 경복궁에 해당되는 낙안의 동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바라본 상징 경관이 하늘=산=동헌이라는 일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세종로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하늘=산=경복궁의 경관과 동일한 것이다. 나아가 주변의 산줄기 역시 풍수적으로 합당한 주산-좌청룡-우백호-안산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낙안읍성의 남북축 역시 주산-안산의 방향과 일치시키기 위해 정남이 아니라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세종 이후 축조된 읍성 대부분에서 나타났으며, 읍성이 축조되지 않은 상당수 고을에서도 일반적인 경향성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출처: 한국 역사 지리, 544~545,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엮음. 이준선 외 지음>

 

 

1397년(태조 6)에 고려 후기부터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세종실록』에는 1424년(세종 6) 9월부터 성벽을 돌로 고쳐 쌓으면서 원래의 규모보다 넓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읍성은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의 긴 장방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동문은 악풍루(樂豐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鎭南樓), 서문은 악추문(樂秋門) 등으로 불렸는데 터만 남아 있을 뿐이고,
옹성은 남문터와 서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적대는 전하는 기록대로 동문터 좌우와 동북쪽·동남쪽 모서리에 각각 하나씩 있다.

성벽의 둘레는 1.385㎞이다. 동문터의 남쪽 부분이 가장 잘 남았는데, 높이는 4.2m이고, 위쪽 너비와 아래쪽 너비는 각각 3∼4m, 7∼8m이다.
아래쪽에 커다란 깬돌을 이용하여 쌓아 올리면서 틈마다 작은 돌을 쐐기박음하였으며, 위쪽으로 갈수록 석재의 크기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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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 채석강

Posted by 지오VR
2017.04.02 18:28 한국지리답사

<닭이봉 퇴적층, 호수 가운데 모래와 펄이 오랜 세월 한켜 한켜 쌓여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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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의 '강'은 '강(江)'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에 취해 뱃놀이를 하던 중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강(岡)'자는 언덕이나 산등성이를 뜻하는 것으로 해변에 드러난 해안절벽을 일컫는 말이다.


중생대 백악기 말 호수에서 퇴적된 지층

채석강의 지질은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화강암과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그 위는 중생대 백악기 무렵에 형성된 퇴적암이 덮여있다. 이는 과거에 이 일대가 바다나 육지의 호수였음을 뜻한다. 약 7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의 대규모 지각 변동으로 저지대를 이루는 분지가 여러 곳에 생겨났고, 이곳으로 물이 흘러들어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오랜 세월 동안 자갈과 모래가 때로는 셰일과 진흙이 강물을 타고 내려와 여려 겹의 퇴적층이 형성되었다.


이후 신생대에 들어와 이 퇴적층은 지반의 융기로 지표에 드러나게 되었고, 제4기가 시작된 약 200만 년 전부터 수차례의 해수면 변동에 의해 깍이고 잘려나가면서 지금의 퇴적층 단면을 드러냈다. 지금도 채석강은 바다의 물결에 의해 육지쪽으로 계속 침식을 받고 있다.


격포리 일대의 퇴적 규모는 중생대 백악기의 다른 호수들에 비해 작은 편이었지만, 호수는 길이가 대략 수십km, 폭이 수km, 최대 수심 200~300m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건조한 산지에서 공급된 많은 퇴적물을 머금고 빠르게 흘러가는 붉은 강들이 호수 주변에 여럿 분포했을 것이다.


지질 변동의 역사와 기후변화를 알 수 있는 해식 절벽

채석강의 해식 절벽에 노출된 퇴적암 층리를 보면 그것이 쌓일 당시의 호수 환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격포리 퇴적층은 하부에서 상부로 가면서 역암에서 이암으로 입자가 작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채석강 해수면 부근의 암석은 검은색의 이암과 실트암으로 되어있어 얇은 책이 연상되지만, 윗부분은 층리가 두껍게 나타나는 사암 곳곳에 앏은 역암층이 끼어 있다.


퇴적 구조상 채석강의 아래층일 것으로 보이는 봉화봉 남쪽에는 큰 바위들이 포함된 역암층이 두껍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크고 위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퇴적 구조로 볼 때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역암층이 쌓인 환경은 수심이 깊고 경사 급한 호수 속이었으며, 층의 두께로 볼 때 그 시기는 비교적 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입자가 고운 이암과 실트암이 쌓일 때는 비교적 평온한 수중삼각주 평원이었으며,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다. 

호수의 퇴적 환경을 종합해보면 하부에서 상부로 가면서 먼저 호수 가장자리의 수중 삼각주 사면과 평원에서 퇴적이 시작되었고, 이후 분지가 침강하면서 수심이 깊어져 호수 바닥에서 퇴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자연사 기행, 한겨례신문사 및 한국 지형 산책, 이우평>


<그림출처 : 한반도의 자연사 기행, 211쪽, 한겨례출판, 전승수,김승범 박사 자료>


해식절벽에 분포하고 있는 지층은 대부분 수평으로 층리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어떤 셰일층은 단층이 져 있고, 어떤 사암층은 심하게 구부러진 습곡이 발달해 있어 한 때 이곳에 지각변동도 활발하게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방파제 부근에서는 사암사이에 모난 돌로 이뤄진 역암층이 끼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 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 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내려 왔는 것을 보여준다.


해식동굴 VR파노라마 보기 사진클릭


해식동굴, 해식동굴은 파랑에 의해 절리를 따라 집중적인 차별침식으로 만들어졌다. 해식동굴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위쪽 지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게 되고, 위의 지층이 무너져 내리면 해식절벽이 해안에서 뒤로 후퇴하게 된다. 


동굴 바같쪽에서 바라보면 사암층 사이에 두꺼운 역암층이 약간 경사진 상태로 끼어 있는데,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 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 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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